에덴의 동쪽- 팀셸! 너는 너의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3/1000) by 하이드

1100여페이지의 대작인 <에덴의 동쪽>은 <분노의 포도>와 함께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스타인벡은 "내 최고의 대표작으로, 이전에 쓴 다른 작품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준비였다." 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의 배경인 살리나스 계곡은 작가의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고, 새뮤얼 해밀턴은 작가의 조부를 떠올리며 쓴 것이며, 작품 속에 존 스타인벡 어린이가 나오기도 한다. 제임스 딘이 주연하고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영화로도 유명한데, 표지 역시 제임스 딘이 나오는 영화컷을 쓰고 있다.  영화는 앞으로 볼 예정인데, 영화 줄거리와 책의 줄거리가 영 다르다. 내용도 다르거니와 다루어지는 부분도 이 대작의 1/10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 많은 매력적인 인간상들의 부분이나마 볼 수 있을 것일는 점에서 기대가 되긴 한다.



이 작품은 해밀턴가와 트래스크가 3대에 걸친 선과 악, 카인과 아벨, 사랑과 증오의 서사시이다. 
서부의 살리나스 계곡에 정착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아일랜드에서 온 해밀턴가가 자리잡은 곳은 살리나스 계곡에서도 최악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고, 트래스크가의 애덤 트래스크가 후에 와서 자리잡는 곳은 알짜배기 땅이다. 이것은 땅의 이야기는 아니다. 땅위에 사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해밀턴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이자, 살리나스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트래스크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은 바로 새뮤얼 해밀턴이다. 살리나스의 누구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독자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미워하기는 커녕, 사랑에 빠지고 만다. 발명가고, 긍정적이고, 항상 유머러스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손재주 있는(개척지의 농가에서 손재주 있는 사람은 스타 중의 스타다)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덤 트래스크의 중국인 하인 리와 함께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직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다. 

그런 해밀턴이 일군 해밀턴가는 "살리나스 계곡에 안전하게 정착해서 단단한 기반을 닦은 훌륭한 가문이었고, 다른 집안보다 더 가난하지도, 더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런 데다 보수주의자와 혁신주의자, 몽상가와 현실주의자가 적당히 섞인 비교적 균형이 잘 잡힌 가족이었다. 새뮤얼은 자기 자식들을 흐뭇하게 여겼다. "

딸들과 아들들. 각각이 모두 새뮤얼을 닮아서 매력적이고, 똑똑하다. 존 스타인벡은 새뮤얼의 딸인 올리브의 아들로 나온다. 의상실을 하는 사랑스러운 대시라던가, 몽상가 톰도 인상적이지만, 나는 이 가족 중에서 새뮤얼을 빼고는 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현실적이고, 돈을 버는 재주가 있는 그인데, 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의 가족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이 책은 이 아들 딸들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정도로 짧더라도 강렬하게 그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트래스크가에는 애덤 트래스크가 있고, 쌍둥이 아들인 아론과 칼렙이 있다.
주인공을 꼭 한 명 꼽아야 한다면,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새뮤얼이라 치더라도) 애덤 트래스크인데,
애덤의 아버지인 사이러스 트래스크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들 가족의 이야기에 많이 할애하고 있다. 이병으로 제대하여 군대에 대해 부풀려 말하며 거짓말을 하다가, 공부하게 되고, 결국 어째어째 재향군인 대표로 워싱턴까지 진출하여, 나중에는 장례식에 부통령이 참가할만큼 영향력 있는 몸이 된다. 그가 남긴 엄청난 유산은 아들인 애덤과 찰스에게 돌아간다.
이 가족의 특징은 카인과 아벨과도 같은 애증의 형제인데, 사랑받는 애덤, 아론, 사랑을 갈구하는 찰스, 칼렙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갈구하면서 자라는 어린아이의 속은 어둡고 복잡하고, 한없이 엉켜 있다. 반항적이고, 자신 안의 악마적인 면을 느끼고 있으며, 그러나 동시에 형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고, 때로는 해치고 싶고, 고통받게 하고 싶고, 영악한 이들. 
제임스 딘과 무척 어울릴 것 같아 영화도 기대중이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등장하는 케이티. 천사같고, 인형같은 외모의 그는 통찰력 있는 새뮤얼과 리가 보기에는 악마이고, 내가 보기에는 딱 사이코패스다. 끝가지 그녀에 대해서는 모호하지만, 중간중간 연민을 일으킬 장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태워 죽이고, 돈을 훔쳐 집을 나와 창녀생활을 하면서 남자를 후리다가 크게 당하고, 애덤과 찰스의 농장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그녀. 감정이라곤 없고, 인간에게서 '악惡'만 보는 그녀이다. 새뮤얼 해밀턴의 정반대에 서 있는 무서운 여자. 이 여자의 이야기 또한 무척이나 흥미롭다.

대충의 등장인물 이야기만 해도 이렇게나 길어진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천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 나오는 형제들. 그 중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어둡고 복잡한 내면의 그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실수와 충동적인 행동도 그들에게는 선한 이들의 그것보다 배로 힘겹다. 
그러나, 이 책의 (내가 생각하기에) 주제이기도한 팀셸. 히브루어로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논쟁은 애덤과 새뮤얼과 리가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주로 리의 의견이고, 새뮤얼이 받아들인다.

"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려요.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죠. 그런데 흠정역 성경은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뜨이지요. 그런데 '팀셸(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의 뜻으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길은 열려 있다는 말이니까요. 즉, 책임을 사람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곧 '너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의미죠. 모르시겠어요?"

인간의 선택. 실수를 하고,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요. 인간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라는 것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꽤나 의미심장한 이야기이다.

존 스타인벡의 책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는데, 그의 문장 또한 맘에 든다.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와 어둡고 음울한 캐릭터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범죄와 미움과 증오는 있지만, 독자는 누구 하나 미워하기 힘들다. 여러가지 일화들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절절한 느낌 또한 최고다. 중간에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사랑하는 주인공이 죽었을때는 그 이야기를 너무 슬프게 해서 책을 한동안 덮기도 했다. 거장이 괜히 거장이 아니다. 


 원리뷰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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